한번 속으면 속인 사람의 잘못, 두번 속으면 속은 사람의 잘못, 세번 속으면 공범이라는 말이 공감되는 시점이다.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이렇게 됐을까? 작금(昨今) 예천의 현주소다.  아무리 속이고 속는 가짜가 득세하는 말세(末世)라지만 삿된 소수 정치 언론인이 지역민을 희롱(戱弄)하고 정치 공무원이 득세(得勢)하며 그것도 모자라 가짜 정치 체육인이 핏대 세우는 혼탁(混濁)한 시절이다.  카르텔(Kartell)을 형성한 이 몇몇 부류(部類)는 늘 권력에 기생(寄生)하며 약자들을 속인다. 내놓고 속이고, 악착같이 속이고, 매몰차게 속이고, 대차게 속이고 그것도 모자라 계획적 망국적(亡國的)으로 속이는 데 이골이 나 있다. 그래서 너·나 없이 속고 그분도(?) 속고 있을 법하다.  이들은 웬만큼 빨았으면 물러설 법도 한데 전혀 그럴 기미(幾微)가 없다. 배짱과 용기가 가히 국보급(國寶級)이요, 얼굴에 대리석을 깐 지도 오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더 가관(可觀)인 것은 어느 때인가부터 지자체장이 군민을 속이기 시작한 것이다. 진즉에 정치인이 순수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예천은 전직 3명의 군수에 이어 현 김학동 군수가 집권 중이다. 그런데 이분들 중 누가 업무를 잘하고 못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이 그×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다. 결론적(結論的)으로 오십보백보다.  현 김학동 군수는 어떨까? 그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더한 측면도 없지 않다. 예를 들자면 `화합`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토착 세력을 끌어안고 갈팡질팡 혼줄(魂茁)을 놓고 있다.  이분은 지지자와 지역민을 속이는 방법도 참 독특하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속된 말로 물에 물 탄 듯한 자세다.  이 수법에 걸려서 뒤통수 맞은 사람이 어디 한두명일까? "후보 시절 김학동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창궐(猖獗)해도 또 전매특허(專賣特許)인 일관(一貫)된 함구(含垢)뿐이다.  그렇다면 그 상투적(常套的) 나팔은 언제까지 불어 댈 것이며 또한 `공평`을 가장한 `불공평`의 시간은 언제 막을 내릴 것인가? 토끼 뿔, 거북이 등에 털 날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뜻인가? 돼지가 낯을 붉힐 일이며 요원(遙遠)할 뿐이다.  군수 자리에 앉았으면 군수 노릇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정권(政權)마다 빌붙어 사는 추잡한 자들을 `화합`이란 미명(美名) 아래 곁에 두고 `희희낙락`이다.  기생충처럼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이들의 추악상을 대다수 군민들은 줄줄이 꿰차고 있는데 이분은 내칠 것처럼 `쇼`를 해 놓고는 더 밀월(蜜月) 중이다. 무슨 빚진 게 많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그의 행동에 지역민은 속이 끓어 오르고 열불이 나며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다 타다 꺼진 재처럼 피로감에 빠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분의 인성과 품성이 부족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직언과 조언을 하는 참모(參謀)가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여년의 야인 생활 끝에 군정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전임(前任) 지자체장의 잘함과 못함을 익히 듣고 보고 느끼면서 자신의 정치관을 스스로 형성(形成)했을 것이다. 그런데 초심(初審)은 오간 데 없고 썩은 고목들로 집을 지으려고 하니 그 발상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김씨는 의인(義人)도 아니고 또한 영웅(英雄)도 아니다. 그러기에 그가 토착 세력을 손절(孫絶)할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그래서 일찌감치 기대를 접자는 것이다. 그래야 실망이 쌓여도 분노로 표출(表出)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뒤집거나 취소한 것이 많다. 자신의 고향 의료 폐기물 공장 설립 문제만 해도 그렇다. 처음의 강경(强勁) 의지는 오간데 없고 이젠 슬그머니 "땅 주인이 땅을 팔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로 선회(旋回)했다.  또 신 도청 안동시와 예천군의 통합문제도 그렇다. "신 도청 입주민들의 불편 사항 해결 후 행정 구역통합은 나중에 논의할 문제다"라고 어물쩍 여운(餘韻)을 남겨 통합 빌미를 제공했다.  현실이 이럴진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겠는가? 군민이 붕어, 가재가 아닌 이상 한두번 속지 어디 계속 속겠는가? 여기에 이르면 할 말이 없고 말문(言文)이 막힌다.  또한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저잣거리 장사꾼도 상도(商道)와 신의(信義)가 있다. 하물며 위정자(爲政者)의 신의는 더 할 수 없는 밑천이요 자산(資産)이다.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확신 정치는 많은 모순(矛盾)을 낳을 것이며 일방통행식 행정과 오만(傲慢)으로 가득 찬 고집불통(固執不通) 정치는 버려야 될 악폐(惡弊)일 것이다.  정치는 `신뢰(信賴)와 공정(公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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