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불교의 사상과 역사에 뛰어난 연구 성과를 선보이고 있는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가 `11번째 청송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청송학술상`은 청송 고형곤(1906년~2004년) 박사의 학덕을 선양하고자 제정돼 지난 2007년부터 동서 철학 발전에 공헌한 학자를 선정 수상하고 있다.
일본 근대불교의 사상과 역사에 몰두해 뛰어난 연구 성과를 도출하고 있는 이 교수는 2020년 펴낸 `폐불훼석과 근대불교학의 성립 근대 초기 일본 불교 재활 연구`(올리브그린)는 1868년 메이지정권이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을 내린 뒤 일본에 광풍처럼 몰아친 거센 탄압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 오늘날 세계 불교학의 학문적 중심지 국가로 자리매김 했는지 해답을 주고 있다.
또한 이 책자는 불교가 존폐의 기로에 놓인 절체절명의 시기 속에서도 치열하게 사고하고 실천했던 이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불자들에게 `시대의식`과 `사명감`을 갖게 했다는 극찬도 받고 있다.
이 교수는 "`폐불훼석과 근대불교학의 성립`이 심사위원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다"며 "수상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해졌다.`청송학술상`은 5년간 발간된 책 가운데 단 한권을 선정한다고 들었다. 수천권의 책 중 제 책이 그 한권으로 선정돼 영광이다. 10년 동안 몰두해온 연구를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교수는 앞으로도 보다 현실적인 일본불교의 모습을 연구해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근대기 불교학자이자 도요대학을 세운 이노우에 엔료(1858년~1919년)의 활불교 철학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1873년 일본에서 기독교 신앙금지 정책이 풀리면서 다수의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게 됐다"며 "하지만 당시 정부는 신도(神道) 이념만으로 급변하는 사회양상에 대응할 수 없었다. 이때 엔료가 기독교 비판 논리에 앞장 섰다. 불교를 서양철학·기독교 교리와 낱낱이 비교하고 불교의 진리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냈다"고 설명했다.
일본 근대기는 우리나라 식민지(일제강점기)와 직결돼 있기에 이 시대 연구가 폭 넓어지면 한국불교사 연구도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이 교수의 연구서적인 `폐불훼석과 근대불교학의 성립 : 근대 초기 일본 불교 재활 연구`는 2020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 올해 학술부문 `세종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대표 저서로는 반야학술상에 선정된 `샨타라크쉬타의 중관사상`을 비롯해 `지성불교의 철학`, `근대일본과 불교`(공역) 등이 있다.
이 교수의 `실담범자입문`은 우리나라 유일의 실담범자 입문서로 신묘 장구대다라니를 비롯해 각종 진언다라니를 필사할 수 있도록 불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시상식은 지난 5일 서울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 열린관 1층에서 열렸다.
장영우 기자ycyw57@naver.com
#제11회 수상자 이태승 위덕대 교수의 이야기
출발점에 우리들 모두가 알고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부친이신 청송 고형곤 박사님의 유지(遺旨)를 새삼 느끼며 향후 박사님의 정신과 사회에 대한 큰 뜻을 더불어 배우고 간직하는 자리로 만들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청송학술상의 수상자로 선정되는 큰 계기를 만들어준 `폐불훼석과 근대불교학의 성립-근대 초기 일본 불교 재활연구`는 오랜 기간의 땀과 열정이 담겨있는 저에게도 소중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근대기의 불교에 관심을 가진 이후 이런 책을 출간하는 것은 꿈이자 염원이었다고 할 수 있었지만 2009년 저와 부산의 외우(畏友) 권서용 선생이 함께 번역한 `근대일본과 불교`의 출간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책을 출간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2009년 이후 2020년 출간에 이르는 10여년의 시간은 스스로에게도 땀과 열정의 시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간이었습니다.
특히 이 기간 중에 일본 근대기의 소중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애써주시고 연구를 격려해주신 분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의 교수로 재직하신 스에키 후미히코 선생님(2015년 퇴임)으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저의 근대불교 연구의 계기를 만들어주시고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최병헌 교수님께도 늘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며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나온 10여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감사와 고마움이 담겨있던 시간임을 느끼지만 그렇더라도 순간순간의 시간 속에 끊임없이 엄습하는 긴장감과 두려움의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연구가 가깝고도 먼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일본과의 관계 속에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서는 메이지유신으로 시작되는 근대기 일본불교가 겪은 소위 폐불훼석의 불교 탄압으로부터 회생해 도쿄대학을 중심으로 근대불교학의 토대가 성립하는 경과를 살펴본 책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의 불교계는 근대 이전 즉 도쿠가와 막부의 근세기에는 불교가 거의 국교에 해당할 정도로 사회적인 역할은 물론 신앙상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곧 260여년의 근세기에 불교는 사회적 행정기구의 역할은 물론 모든 백성들의 신앙적 구심점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메이지의 근대에 들어 돌연 불교는 종교상 적폐대상으로 간주돼 메이지정부의 공적 행정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 적대시 내지 백안시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여기에는 메이지 정부의 정치체제로서 천황제의 이념을 제공하는 신도국교화의 종교정책으로 불교가 배척된 것에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지만 근세기 오랜 기간 불교가 국교의 지위를 누린 이면에 종교적 활력이 저하된 데 대한 사회적 반발 등이 작용했던 것도 물론입니다. 불교에 대한 국가적 적대감은 폐불훼석의 사회적 풍조로 나타나고 또한 일반사회에서의 적대감 또한 불교 경시와 무시의 사회적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근대초기 들어 불교계에 닥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본서는 근대초기의 불교계에 엄습한 불교에 대한 탑압과 무시의 상황을 불교계가 어떻게 극복해 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순히 극복이라는 상황을 넘어 오늘날 전 세계에 불교학의 메카로서 자리 잡은 일본 불교학계의 성립이 불교탄압의 폐불훼석과 어떠한 관련을 갖는가에 대한 오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뜻을 담은 본서는 전체 10장의 내용을 편의상 `서장`과 다음의 4부-`제1부 : 폐불훼석과 불교계의 대응`, `제2부 :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제3부 : 이노우에 엔료의 생애와 사상`, `제4부 : 부편`-로 나눠 살펴보고 그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근대일본의 역사는 자연스레 한국과 긴밀한 역사로 이어집니다. 저는 오늘날의 일본불교가 불교학의 메카가 된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메이지 유신 이후의 경과를 살펴보았지만 저의 고찰의 범위는 아직 본격적인 국군주의가 일어나기 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국군주의의 발흥과 실질적으로 전쟁에 대한 참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 근대의 시기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국군주의와 전쟁에 참여하는 시기에 불교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연구도 상당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디까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임할지 속단을 하기는 어렵지만 향후로도 근대기의 일본 불교의 모습이나 나아가 일본불교와 일제강점기의 한국불교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청송학술상의 수상자로서 오늘과 같은 귀중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