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국 미술사를 이해하면서 명대 남종화의 바탕이 당(唐)대 왕유(王維, 699~759년)의 자연에 순응하며 자유롭고 풍부한 시정(詩情) 학문의 깊이가 화단의 먼 미래를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시대마다 창의적인 미술 영역을 구사하는 독특한 선구적 사상의 지식인들에 의해 예술이 이끌어졌다.          그림 또한 기법에서 구륵법과 몰골법, 진채와 담채, 대비적인 기법이 독자적 영역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명대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융의 시(詩) 중 `절지(折枝)`를 보자. 처음부터 근본이 없는 것이 아닐 터지만  화공의 재주로 꺾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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