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충격을 준 사건은 12·3 계엄일 것이다. 시민 대다수가 한밤중 뉴스를 통해 계엄군이 총을 들고 국회로 들어가는 모습, 군 헬기가 여의도 상공을 맴도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에 밤새 속보를 보며 날을 지새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최근 병원을 찾는 이들 중에 계엄 사태로 불안과 분노, 우울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내원하는 분들 중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뉴스만 보게 된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 등 심리적 충격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 이후 각종 언론과 SNS에서는 `계엄 트라우마`라는 말이 등장했다. 트라우마,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충격적인 사건의 경험을 뜻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사고, 폭력 등 일반적인 스트레스 수준을 넘어서는 사건을 통해 겪게 되는 것으로 사건 후에도 계속해서 고통을 느끼고 불안, 우울, 불면, 분노, 무기력 등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난다.
`계엄 트라우마`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엄밀히 말해 현재 시민이 느끼는 고통은 `스트레스 정상 반응`이며 의학적 `트라우마`와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백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트라우마 사건이 있은 후 1개월 후에도 동일한 증상이 반복되는 경우다. 또 진단 기준을 사고나 부상을 직접 겪거나 주변인의 사망 등을 목격했을 때로 한정하고 있다"며 "이렇게 봤을 때 그날 대부분의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사건을 간접 경험하게 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때 느껴지는 우울과 불안, 분노 등은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통스럽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질환으로 진단되지 않는 경우 대개는 몇 시간 뒤 회복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기 때문"이라며 "팬데믹 시기 `코로나 블루`라고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등을 지칭하는 용어가 유행했듯 지금 `계엄 트라우마` 역시 사회적인 용어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현장에 있었던 일부 중 충격이 심한 경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기존에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이 있던 이들이나 과거 5·18 계엄 등 비슷한 경험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재발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헌법재판소 심리 등 정리되지 않은 과정에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되며 뉴스를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이 불안과 분노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까.
백 교수는 "위기 시기에는 정확한 정보를 얻고 대처하기 위해 뉴스는 꼭 봐야 한다. 그러나 `뉴스를 하루 종일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밤에 잠을 안 자고 뉴스를 보면 자율신경계를 흥분시켜 각성하게 만들어 하루 종일 뇌가 흥분 상태에 놓이게 되고 평소 자신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여러 일상 루틴을 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고 긴장도가 높은 시기에는 자기 몸과 마음의 반응을 빨리 알아차리고 대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백 교수는 "나의 스트레스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 불면이 생기고 또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상처를 주게 된다. 또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며 "여기에 과음까지 더해지게 되면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트레스가 심할 경우 심장이 빨리 뛰어 불안을 가속한다.
복식 호흡으로 숨을 의식적으로 조절하고 명상과 운동을 통해 생각을 멈추는 게 좋다. 또 트라우마가 아닌 정상 스트레스 반응이라도 수면 관리나 조기에 전문가 상담을 받으며 질환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