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단에서 퇴직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다. 선배는 20년간 담배를 피우다 10년 전 금연에 성공했음에도 몇 달 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이후 입원치료비용을 매월 600만원 지출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흡연으로 인한 사망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체감할 수 있는 흔한 일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흡연 사망자가 한 해에만 5만8000명이나 된다고 하니 시도별 인구와 비교하자면 1년 과천시 인구 하나가 사라지는 결과다.
지난해 10월 6일 우리나라 금연 정책 역사에 한 획이 되는 중요한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이 재적 248명 중 찬성 243명, 기권 5명, 반대 의원 0명으로 통과된 것이다.
98%의 찬성률로 쉽게 통과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난 10년 동안 지속 발의돼 여러 차례 논의돼 왔다.
암은 우리나라 사망원인의 주요인이며 암 사망률 원탑은 폐암이다. WHO(세계보건기구) 연구 결과에 따르면 80% 이상이 흡연과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위험한 담배를 기호식품이라며 많은 국민이 사용한다. 하지만 실제 담배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담배 제조 과정에서 제조사가 어떤 성분을 첨가하는지 등에 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호흡기로 흡입하는 기호식품인데도 그 정보는 제조사만 알고 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법 제정으로 상식에 맞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사실을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의 자발적 금연을 유도하는 단계를 넘어 그 근본적 원인 제공자인 담배회사의 책임규명과 흡연질환으로 누수된 건강보험재정 지출을 보전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10년 전 담배회사를 상대로 53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청구액은 흡연과 인과성이 큰 3개 암(소세포암, 편평상피세포암, 편평세포암) 환자 가운데 2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흡연했고 기간이 30년을 넘는 3456명에 대해 공단에서 2003~2013년 진료비로 부담한 금액이다.
그러나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흡연자들의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본래 의무이고 담배와 질병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공단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담배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 제정은 헌법 제35조제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구체화한다. 또한 10년간 이어져 온 공단의 `국민건강권 보호`를 위한 담배 소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영업 비밀로 숨겨왔던 담배 성분에 대한 정보를 국민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공단은 금연으로 인해 한 해에만 3조8000억원의 진료비를 해마다 지출하고 있다. 흡연으로 인해 지출하는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너무나 많다.
우선 올해 의정갈등으로 인한 비상진료체계 지원에 7781억이 들었으니 그 4.9배를 지원할 수 있는 규모이며 의료개혁 국가제정 투자계획안에 담긴 `2025년 필수의료 기능강화`에 드는 4957억원의 7.6배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보험료 수입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조만간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 지출의 증가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할 경우 이를 충당하는 비용은 보험료와 조세를 납부하는 가입자 및 일반 국민에게 이중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담배 소송은 국민의 소중한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재정 보전은 물론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판단 받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미국에서 담배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듯이 우리나라 사법부도 과거만 답습하지 말고 선진 판결을 해야 될 때이다.
담배의 위해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담배회사가 흡연 폐해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가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담배 소송에서 인정해 우리 사회의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여주는 첫걸음을 내디뎌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