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가운데 점 같은 바위덩이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자연이 있다. 그 속에 보일 듯 말듯 길이 있다. 사람이 살며 다져 놓은 세월의 길이 있다. 어느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흙이 살아 있는 길이다. 수없는 길들이 있다. `걷기 열풍`에 발이 닿는 곳은 모두 `이런 길, 저런 길` 모두 자연을 비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있다. 이제 조금씩 그 길에서 아픔이 배어 나온다. 상업적으로 변하고 본래 취지와 어긋난 모습들로 채워져 광풍처럼 불던 휘파람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여기 자연 그대로, 세월이 빚어 놓은 길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오로지 발바닥 힘으로 만든 길이 있다. 울릉도 흙길이다. 한점 흙들은 수많은 세월, 바다로 빨려 들어가 사라질 만도 한데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조금씩 차근차근 울릉도의 길들을 내보이고자 한다. 어른들이 삶의 흔적으로 남긴 속살 같은 길들을 걸어본다.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오로지 삶을 위해 이동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울릉도 옛길. 실타래처럼 구석구석 수없는 길들이 한숨처럼 자연에 덮이고 세월에 사라지고 있다. 아직 사람들이 밟는 길들을 먼저 걸어본다. 이제 한 점 섬 울릉도를 머릿속에 그려 넣고 천천히 길을 나선다. 이곳의 길은 낯선 곳이다. 호기심 한가득 품고 서서히 지칠 만큼 걸어야 하는 길이다. 6월 어느 날, 어깨를 훌쩍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울릉도를 걷다 돌아간 여행객이 있었다. 애처롭고 미안했다. 무게를 가늠하기 힘든 짐을 지고 있었다. 울릉도 둘레에 걸쳐진 시멘트 길을 걷고 돌아가는 그는 "더 걸어 볼 곳이 있을듯 한데?"라는 바늘 끝처럼 예리한 말을 남겼다. 다음에는 테두리가 아닌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했다. 말 없는 약속을 하고 갔다. 그를 기다리며 걸었다. 울릉도는 깎아지른 날카로운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산과 산 사이 계곡에 사람이 산다. 다음 마을로 가려면 산을 넘어야 한다. 모든 길은 산을 넘거나 이리저리 휘둘러서 나 있다. 길을 가지 않고 이웃 흔적을 볼 수 없다. 기하학적 선을 따라 이어진 밭의 경사도와 그 밭에 코를 박고 일하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고 뒤로하며 힘주어 걷다 보면 맞바람 불듯 내리막이 이어지고 다시 오르막이 다가온다. 그 사이 몸을 휘감는 바다와 숲의 진득한 냄새가 진동한다. 울릉도는 걸어봐야 안다. 화산석을 세월로 곱게 빻아 만들어진 자연의 흙을 밟아봐야 울릉도를 가슴에 옮긴다. 울릉도에 오시려면 든든한 신발 한 켤레 더 챙겨 품속 같은 길을 꼭 걸어 보라 하고 싶다. 이제 차근차근 몸속 혈관들이 파도치듯 그 길의 흔적들을 맥 짚듯 더듬어 본다. 울릉군은 둘레길을 세 구간으로 나누고 있다. 1구간은 저동에서 시작해 현포에서 끝나는 구간이다. 이 구간 중 산 흙길이 이어진 내수전 전망대 입구에서 석포마을 입구까지 약 3.4km 구간이 흙길이다. 이곳은 섬 주위를 나이테처럼 둘러싼 일주도로 중 유일하게 서로 닿지 않은 길이다. 아직은 오로지 걸어야만 이어지는 길이다. 일주도로 공사가 시야 밖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2019년이면 잇지 못한 4.4km 구간이 이어진다. 울릉도 섬 둘레는 시간따라 사라지고 자연이 덮어버린 흙길이 이어져 있다. 내수전 전망대에서 석포마을 초입까지는 흙길이다. 이 길을 들어서면 삶의 모습을 닮은 듯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를 비슷한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저동항을 출발해 내수전 전망대 입구까지 오른다. 전망대로 향하지 말고 죽도를 오른쪽에 두고 숲 속으로 내려간다. 10여 분, 정비된 길을 따라가면 그곳부터 진정 울릉도 흙 산길이 시작된다. 숲에서는 봄이면 햇살과 엽록소의 기지개로 어린 명이들이 군락을 이루고 섬노루귀가 색색 피어난다. 너도밤나무, 우산 고로쇠, 마가목 나무들이 환호하듯 늘어서 있다. 여우 꼬리사초, 섬바디 풀, 미역 고사리, 공작 고사리가 파도처럼 발목을 휘감는다. 울릉도 토착민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으로 잘 다져진 흙길을 30분 정도 오르고 내려가다 보면 정매화골(곡) 쉼터가 나온다. 작은 계곡이다. 예전에 사람이 살았다. `정매화`란 인정 많은 주막집 여인이 살던 외딴집이 있었다 하여 `정미야 골`이라 불렸다 한다. 1962년부터 19년 동안 이곳에는 이효영씨 부부가 살았다. 당시 읍지역 도동에서 북면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거나 이 길을 걸어 넘었다. 배가 다니지 못하는 험한 날씨에는 이 골짜기를 지나야 했다. 이 부부가 폭우, 폭설 속 조난자 약 300여 명을 구했다는 미담이 전해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잠시 쉬며 바람에 실려 오는 그들의 향기 짙은 전설을 맡아보자. 쉼터 정자를 지나 돌부리 군데군데 박힌 길을 걸으며 다시 오른다. 어깨너머로 땀이 흐를 즈음 수령 6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동백나무 군락 터널을 지나 맑고 깊은 숲길이 이어진다. 습기 머금은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산속 비린내는 세포를 일으켜 세운다. 온몸의 숨구멍을 바람에 맡기고 울릉도의 속 살을 보듬어 본다. 하늘을 보려 고개를 올려도 사람의 몇 배 키를 가진 나무들이 내려다본다. 천천히 읍 경계를 지나고 천부 마을표지판을 지나면 지루한 오르막이 끝난다. 넓은 산속 풍광이 눈 속을 채운다. 한낮의 햇살도 쉽게 뚫지 못하는 짙은 숲 그늘이 늘어서 있다.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해가 비치는 평온한 길이다. 나뭇잎 사이로 걸러지는 빛은 유순하게 온몸에 내린다. 바다로 이어진 골짜기를 훑어서 올라오는 바람을 맞이한다. 가끔 보이는 계곡 물에 잠시 숨을 고른다. 쉼터에서 눈앞 바로 보이는 섬 밖의 섬들, 관음도와 죽도를 끌어당겨 안아본다. 한 시간 반가량 걷는 내내 발을 간지럽히는 식물이 있다. 미역을 닮아 미역 고사리라 부르는 양치류가 야트막하게 커튼처럼 쳐져 있다. 원시림의 기운을 뿜으며 제각기 흙길을 지키고 있다. 곧게 뻗은 단단한 평 길에는 산죽대가 열병식 하듯 늘어서 걷는 이들을 호위한다. 울릉도 흙길은 좁다. 둘이 어깨 맞대고 걷지는 못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서로를 살피며 걸어야 한다. 도시 지하철 속 사람들처럼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바람 흐르듯 걷는다. 걷다 보면 흙길이 끝나고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이 길은 왕복을 해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데 약 3시간이 걸린다. 한쪽은 산이고 반대는 바다로 이어지는 경사 심한 비탈이다. 천천히 좌우 살피며 걸어도 양쪽 모두 한눈에 담기 어렵다. 오로지 `걷기`위해 이 길을 걷는다면 말리고 싶다. 이 길은 동네 마실 가듯 두런두런 걸어야 한다. 걷기 위해 땅만 보고, 앞만 보고 걷는 길은 아니다. 고개 돌려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바다도 보고, 계곡 아래 넘실대는 초록들도 봐야 한다. 울릉도 흙길은 다채로운 표정으로 가득한 그림 바다가 되어 울렁거린다. 눈맛 다시며 걷고 잠시 세상과 나를 고립시켜 정화 시키는 치유의 길이다. 길은 본래 이래야 한다. 저절로 걸음이 옮겨져야 한다. 오르막의 고통이 오면 내리막의 희열이 있고, 몸 속 세포와 혈관들이 나무랄데없이 나른하게 만드는 평지가 있어야 한다. 울릉도 속 길은 그렇다. 주변을 맴도는 길이 아닌 섬 속을 걷고 내 속을 달래는 길이다. 울릉도 흙길은 계속 이어진다. 임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