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만 명 남짓한 이곳에 한때 하루 오천여 명의 손님들이 울릉도라는 미지의 섬에 발을 디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가파르게 상승하던 입도객 숫자가 한순간 주가 폭락 그래프처럼 꺾였다. 나아지기를 기원하며 지난해를 이겨냈다. 한숨을 희망으로 바꾸고 다시 손님맞이 하던 중 또 다른 아픔이 다가왔다. 울릉도는 언제나 기다린다. 어서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 `우리도 울릉도`의 속살을 비벼보라 하고 싶다. 주말이 되기 전, 여객선 터미널은 조용하다. 하루 오천여 명이 내렸던 관광지라 하기엔 너무 조용하다. 여느 때 같으면 한 배에 900명 가까운 승객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줄지어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육지에서 순풍이 불면 울릉도는 매서운 바람이 분다. 작년 세월호, 올해 메르스, 다시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고 평온해지는 바다처럼 또다시 일어서서 `지나가는 바람`이라 여기며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괜찮아 질 겁니다, 나아질 겁니다" 인사 합니다. "당연하죠!" 라며 손짓합니다. 여객선이 끊긴 휴일, 서서히 가라앉는 파도를 옆에 두고 어깨를 산속으로 들이밀었다. 바짝 마른 신발로 차곡차곡 걷기 시작했다. 도동에서 저동으로 넘어가는 옛길은 도동 울릉군청 옆 길로 올라 행남을 거쳐 저동으로 넘어가는 약 2.5km 산길이다. 이 길은 울릉도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다. 단단한 산줄기와 계곡을 여러 개 넘어야 한다. 대부분 울릉도의 산길은 오르막이 심하거나 내리막이 길거나 아니면 비슷한 비율로 형성된다. 하지만 오늘 걷는 이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지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뒤섞여 있다. 평지를 몇 발자국 걷다 보면 어느새 급한 오르막이 나오고 내리막도 갈지자로 흐른다. 먼 길이고 고된 길이다. 그렇지만 지루하지 않다. 1시간 40여 분이 걸린다. 가는 걸음, 맘이 허락하고 자연이 허락하는 곳에서 쉬는 시간을 포함해도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 고단하고 바쁜 여행객 무리를 뒤로하고 물 한 병 손에 쥐고 이 길을 나서면 소의 코뚜레 사이를 뚫고 나오는 진득한 콧바람 같은 울릉도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저동 옛길은 울릉도의 고단한 삶의 정형을 느끼는 길이다. 산길의 리듬감은 망망대해 파도처럼 숨 가쁘게 흐른다. 찰랑거리며 바위를 훑던 파도가 어느 순간 커다란 흰 물거품을 뿌려대고 사라지는 모습처럼 이 길은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경쾌하다. 도동 군청 옆으로 난 오르막을 지나 주택지를 벗어나면 세월의 흔적을 껴안고 있는 작은 바위들로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시작부터 고되다. 무릎까지 올라온 계단 주변 초록들이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5분 정도 오르면 민가가 있다. 능선의 허리 부분이다. 이 산허리 능선은 위로는 성인봉에 닿아있고 아래로는 깊은 동해로 이어져 있다. 이 능선은 좌우로 도동과 행남, 저동을 구분 짓는 선이다. 아래로 내려서자 곧바로 몸은 계곡으로 쏠린다. 도동항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옆구리를 지나가는 길이다. 산허리를 감싸며 나 있는 길옆으로 나무들은 중력에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기울어져 마치 걷는 이의 머리 위 뜨거운 태양을 막는 듯 서 있다. 여름으로 이어지는 지금, 모든 풀과 나무들은 물오른 초록으로 채워져 터질 듯 우뚝 서 있다. 여름의 숲은 콩나물시루처럼 나무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숲길을 걸어가면 숲 주변은 물러서듯 멀어지고, 멀어지면서 깊어진다. 그 산속 숲길을 걷는 이는 숲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간다. 이 길은 사시사철 발자국으로 넘쳐난다. 주민들의 주말 짧은 산행코스로 길들어 있다. 앞서고 뒤서며 걷기 좋은 길이다. 평지와 오르막 그리고 내리막의 변화가 짧아 지루하지 않다. 오르막을 치고 올라서면 매번 새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보일 듯 말듯 마을이 보이고 어느 오르막에서는 도동항이 바로 발아래 보인다. 40여 분 걷다 보면 시원하게 바다 위에 올라선 듯 언덕에 오른다. 절벽 위인 듯 가파르다. 도동항이 보인다. 잠시 쉬며 도동마을과 해안가, 해안선을 구름 위에 오른 듯 내려다볼 수 있다.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선, 빼곡하게 모여있는 마을의 집들, 멀리 산 위로 난 길들도 보인다. 천천히 10여 분 걸어 내려가면 행남마을로 이어진다. 마을까지 내리막이다. 내려서면 곧바로 대나무 숲이다. 수십 미터 대나무 터널을 지난다. 발가락에 힘주고 걸어야 한다. 길은 좁고 수시로 방향이 바뀐다. 길은 오른쪽으로 흐르다 왼쪽으로 꺾어야 하고 인간에게 계단으로 내어준 나무뿌리를 밟고 지나기도 해야 한다. 놀란 꿩들이 인간을 더 놀라게 만들며 소리치고 날아오르기도 한다. 양손을 뻗어 감싸지 못할 만큼 큰 후박나무가 아주 거대한 파라솔처럼 서 있다. 조금 더 내려서면 행남마을이다. 행남마을은 도동과 저동 사이 계곡에 만들어진 작은 해안가 마을이다. 울릉도에서 가장 동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겨울에도 살구꽃을 볼 수 있다는 따뜻한 마을로, 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하여 행남(杏南)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땅의 모양이 뱀의 입처럼 생겼다고 하여 살구남이라고 도 한다. 오늘 걷는 길은 행남마을을 지나쳐 저동 산길로 바로 접어든다. 행남마을로 내려서지 않고 바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대나무 터널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직진하면 행남(도동)등대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저동옛길이다. 조금 더 올라서면 벤치 하나가 보인다. 벤치 앞을 지나 바로 가면 저동 해안 산책로로 이어진다. 벤치 옆 산 쪽으로 보면 저동옛길 팻말과 함께 작은 오르막길이 보인다. 대나무가 미지의 길을 알려주듯 길 쪽으로 누워 어린아이조차 서서 걷지 못한다. 기어오르듯 몇 굽이를 지나면 허리를 세워 걸을 수 있다. 적막한 산길의 시작이다. 이 길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온 세월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산길이다. 곧바로 오르지 못할 정도의 경사길을 이리저리 뒤틀린 채 위로 오른다. 산속 숲길은 어둡다. 키 큰 나무와 짙은 초록들로 둘러싸여 하늘은 어둡고, 주변도 어둡다. 가을이면 털머위 노란 꽃이 짙은 갈색 나무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은 숨을 쉬며 올라야 한다. 산허리를 지나 따개비 등껍질 같은 산속 숲길을 걷는다. 그사이 산속 기운은 처연하다. 온갖 나무들이 공기 중에 뱉어놓은 자연의 향료를 피부에 바르고 숨에 태워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인적이 드물다. 이 길은 그리 유명하지 못해 다른 길보다 지나는 이가 뜸하다. 대부분 저동옛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저동 해안가로 바로 쏟아져 버린다. 도동 해안 산책로를 따라 행남 등대 거쳐 저동 해안 산책로로 흘러들어 간다. 도동에서 출발해 저동 촛대바위로 이어지는 바닷길은 그리 어렵지 않게 눈요기하며 걸을 수 있다. 파도가 높아 여객선이 끊긴 주말, 혼자 걷는 2시간여 동안 단 두 사람의 흔적만 마주쳤다. 행남마을을 거쳐 저동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깊고, 높고, 구불구불하다. 마치 한순간도 쉽지 않은 이곳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변화무쌍한 바다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들이 땅에서조차 파도치듯 밟아 놓은 삶의 길이다. 한참을 숨을 헐떡이며 걸어 올라야 바다가 콧속으로 들어온다. 꾸역꾸역 걸어 올라서면 오른편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린다. 짧은 대나무 숲을 지나 올라서면 바다 끝으로 행남등대가 보이고 왼편으로 저동 해안선, 죽도와 북저바위가 보인다. 앉고 싶다. 아무 데나 앉아 해안선 낭떠러지 아래서 부는 바람을 맞는다. 파도는 길 아래를 깎아 길 위로 오를 듯 흰 거품으로 육지를 훑는다. 거친 숨을 몰아쉰 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는 청량하다. 가슴 깊이 맑디맑은 시원함이 느껴진다. 울릉도에서 큰 동네인 도동과 저동을 잇는 이 산길은 무거운 길이다. 관광지의 가벼운 산책길은 아니다. 산발 단단히 조여 매고 물 한 병 가방에 넣고 심호흡으로 시작해야 할 길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 산행을 마친 듯 무겁다. 잠시 쉬어 기운을 차리면 왜 그런지 안다. 비교적 단조로운 오르막 산길이고 경사가 있어 주변을 살피기보다 앞만 보며 걸었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은 오르다 쉬면 다시 발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오르막은 천천히 그냥 계속 올라가야 한다. 예전 등짐 지고 이곳을 지나다니던 우리 어른들도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어렴풋이 어른들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살아가기 위해 걸었던 사람들의 발걸음의 무게가 느껴질 것이다. 그리 가벼운 길은 아니다. 가볍게 일어서서 다시 걷는다. 내리막이다. 천천히 이리저리 난 길을 걷다 보면 저동항 모습이 모자이크처럼 눈에 들어온다. 이 모퉁이 돌아서면 이만큼 보이고, 저 모퉁이 내려서면 저만큼 보인다. 한참을 둘러 내려오면 그제야 온전한 저동항의 모습이 눈 속으로 들어온다. 바다 냄새가 난다. 다 왔다.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다. 어느 집 마당에는 온갖 꽃들로 채워져 있고, 저쪽 집 빨랫줄에는 고기들이 빨래집게에 아가미를 붙잡힌 채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걷는 동안 만난 50대 관광객은 3일 일정 중 배가 뜨지 않아 4일째라고 했다. 나흘 동안 이 길을 두 번째 걷고 있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신기한 길입니다. 두 시간 동안 세 군데 마을을 지나고, 걸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길이 다 있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 길은 세상 모든 길의 모습을 담고 있는 `걷는 길의 축소판`이다. 임정은 기자 054791@naver.com